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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1970~80년대 간이역 개통 붐의 배경

대한민국 철도사는 격동의 근현대사 속에서 다양한 변화와 실험을 거치며 성장해왔다. 그 가운데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시기는 간이역이 대거 개설되었던 시기로, 전국 각지에 소규모 정차장이 설치되며 지역 간의 교통망이 촘촘히 확장되었다. 이 시기에 간이역이 집중적으로 개통된 배경은 단순히 교통 수요의 증가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해당 시기의 정치·경제·사회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고찰할 때, 비로소 간이역 개설 붐의 실체가 드러난다.

산업화와 철도 수요의 폭발적 증가

1970년대는 박정희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화와 수출 지향적 경제성장 전략이 전면에 나선 시기였다. 전국적인 산업단지 개발과 공장 설립, 광산과 산림 자원의 활용이 본격화되며, 물류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철도에 대한 의존도는 자연히 증가하였다. 그에 따라 대도시뿐만 아니라 중소 도시, 심지어 산간 벽지에 이르기까지 철도 인프라의 보급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간이역은 이런 상황 속에서 가장 빠르고 경제적인 교통 거점으로 주목받았다.

간이역은 상대적으로 건설 비용이 낮고 운영 방식이 단순하다는 점에서 신속한 교통망 확충에 적합했다. 특히 철도 본선이나 지선 인근에 위치한 산업체, 탄광, 벌목장 주변에 간이역이 설치되며, 원자재와 완제품의 수송은 물론 근로자와 주민의 이동을 지원하는 데 핵심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실용성은 간이역 확장의 가장 주요한 동력이 되었다.

농촌 인구 유지와 균형 발전 정책

당시 정부는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농촌 공동화 현상을 막고,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정책적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간이역은 이러한 국가 전략 속에서도 일정한 기능을 담당하였다. 교통 접근성이 낮은 농촌 지역에 철도를 연결함으로써, 지역 주민들이 장터와 병원, 학교, 관공서를 보다 쉽게 오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철도가 닿는 마을은 교육, 의료, 행정 등의 기초 생활 여건이 향상되어 인구의 유출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었으며, 농산물의 외부 출하 역시 용이해졌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히 경제적 효율성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의도와도 맞닿아 있었다. 당시 중앙정부는 지방 선거가 없는 권위주의적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농어촌 지역의 여론을 일정 부분 고려할 필요는 있었다. 간이역 개통은 '보여주는 개발', 즉 지역 주민의 체감이 큰 소규모 인프라 사업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정차역이 하나 더 생기는 것만으로도 지역민의 생활은 체감적으로 달라졌고, 이는 정부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통근·통학 열차 운행의 현실적 필요

1970~80년대는 자가용 보급이 극히 제한적이던 시기였으며, 농촌과 소도시 주민들의 이동 수단은 대부분 버스나 열차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로망이 충분히 갖춰지기 전까지는 철도만이 믿을 수 있는 장거리 교통 수단이었다. 간이역은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한 결과물이었다.

특히 학생들을 위한 통학열차와 노동자들의 통근열차가 간이역을 중심으로 운행되었다. 당시에는 중·고등학교조차 시·군 단위에만 설치되어 있었고, 학군 간 이동이 불가피한 구조였다. 이때 작은 역 하나가 지역 학생들의 교육 기회를 넓히는 통로가 되었으며, 부모들이 자녀를 도시로 보내지 않고도 교육을 시킬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였다. 이처럼 간이역은 교통의 기능을 넘어 사회 기반 시설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공사 단축과 표준화된 설계 방식

간이역 개설이 대거 이루어질 수 있었던 또 다른 배경에는 당시의 표준화된 설계 방식이 있었다. 철도청은 간이역의 건축 양식과 내부 구조를 획일화함으로써 공사 기간과 비용을 최소화하였다. 표준형 간이역사는 대개 작은 대합실과 매표 창구, 간단한 화장실 시설, 짧은 승강장으로 구성되었으며, 일부는 목조건물이나 벽돌조로 시공되었다.

이러한 간소화는 빠른 시간 내에 전국에 다수의 역사를 신설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였다. 실제로 몇 달 만에 신설 간이역이 문을 여는 사례도 적지 않았으며, 지역 주민들은 새롭게 생긴 역사를 통해 '개발'이 현실로 다가왔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1970~80년대 간이역 개통 붐의 배경

일본의 간이역 개통 붐: 전후 복구기와 지방 활성화 정책 속에서

일본에서는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간이역 신설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가 급속히 회복되고 고도 성장기에 접어들면서, 일본 각지에서는 산업단지 조성과 도시 확장이 본격화되었다. 특히 지방 도시와 농촌 지역 간의 교통 수요가 증가하면서, 기존 철도 노선의 틈새를 메우기 위한 소규모 정차장 형태의 간이역이 대거 설치되었다.

이 시기의 간이역들은 인근 마을이나 초등학교, 작은 공장, 농업 협동조합 창고 근처에 지어졌으며, 구조는 간단하고 무인역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정체된 인구와 자동차 보급률 증가로 인해 오히려 이용률 저하와 역 폐쇄가 이어졌고, 현재는 관광 자원화나 지역주도형 운영 모델로 일부 간이역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2000년대 이후 지방 활성화를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신규 미니 역 개설이나 옛 간이역의 재정비 움직임도 보인다. 일본은 지방 철도회사(제3섹터 철도)가 자치단체와 협력하여, 간이역을 단순 교통 수단을 넘은 문화 거점이나 커뮤니티 공간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중국의 간이역 개통 붐: 개혁개방 초기의 농촌 교통 확장

중국의 경우, 1978년 개혁개방 이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농촌 지역 교통망 확장을 위한 목적에서 소형역과 임시 정차소 형태의 간이역이 다수 신설되었다. 특히 철도 교통이 국가 기반산업으로 중시되던 당시, 중서부 내륙지역이나 소도시 주변의 마을에 철도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소규모 역 설치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간이역은 주로 화물 수송과 농산물 집하 기능에 중점을 두었고, 여객 취급은 부차적이었다. 중국은 인구 규모와 국토 면적이 방대하다 보니, 각 지역의 철도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보완적 정차지로서의 간이역 역할이 뚜렷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고속철도망(고속철·CRH)이 빠르게 확대되며, 기존 일반철도의 간이역 상당수가 정차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폐쇄되는 추세로 전환되었다. 다만 최근에는 농촌관광 열풍과 일부 지방정부의 정책적 지원에 따라, 간이역을 관광역 또는 테마역으로 재활용하려는 움직임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간이역 개통의 이면에 존재한 시대의 요구

1970~80년대 간이역 개통 붐은 단순히 철도 교통을 확대하기 위한 물리적 확장만은 아니었다. 그 이면에는 산업화와 도시화, 농촌 회생 정책, 교육과 노동의 현실적 필요, 그리고 정치적·사회적 동기가 중첩되어 있었다. 간이역은 당시 사회 구조와 국가 전략의 응축된 결과물이자, 시대의 필요에 응답한 인프라였다.

오늘날 일부 간이역은 폐역되거나 무정차 역으로 전환되었지만, 이들이 남긴 물리적·정서적 흔적은 여전히 지역 사회에 영향을 주고 있다. 철도사의 한 축을 이룬 이들 간이역은, 단지 작고 오래된 역사로 남겨지기보다는, 대한민국이 걸어온 개발의 길목마다 존재했던 생활 교통의 증거물로서 다시 조명받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