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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기차가 정차하지 않는 간이역의 존재 이유는?

기차가 정차하지 않는 간이역의 존재 이유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철도망은 효율성과 경제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운영 체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일부 간이역들은 더 이상 열차가 정차하지 않는, 이른바 '무정차 역'으로 전락하였다. 역사가 존재하고 플랫폼이 유지되고 있음에도 정작 기차는 멈추지 않는 이 같은 역들은 왜 철도망 내에서 여전히 유지되고 있을까? 본 글에서는 기차가 정차하지 않는 간이역의 존재 배경과 현실적 운영 이유, 그리고 상징성과 보존의 의미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무정차 간이역의 풍경

일부 간이역들은 과거 한때 지역 교통의 중심지로 활발히 기능하였다. 농산물과 목재 등 지역 특산물을 타지로 실어 나르던 화물 열차가 빈번히 드나들었고, 학생과 직장인을 실은 통근열차도 하루 수차례씩 정차하곤 했다. 그러나 교통수단의 다양화, 인구의 도시 집중화, 자가용 이용 증가 등으로 인해 이러한 역의 이용객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였다. 그 결과, 철도 운영기관은 비용 대비 수익성이 떨어지는 정차를 줄이거나 중단하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고, 그렇게 간이역 중 일부는 무정차 역이 되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이들 무정차 역은 완전히 폐쇄되지 않고 구조물과 명칭을 유지하며 여전히 철도노선의 일원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해당 역이 법적으로는 폐역 처리되지 않았거나, 미래 재정차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보존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몇 역은 지역 주민의 요구나 지역 축제, 특별열차 운행 시에만 한시적으로 기차가 정차하는 예외적 사례도 존재한다.

철도 운영의 유연성 확보와 전략적 관리

철도 운영 측면에서 무정차 간이역의 유지에는 몇 가지 실용적 이유가 존재한다. 첫째, 철도 노선 내 중간 지점에서의 유지관리 거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정기적으로 선로 점검 차량이나 공사 차량이 대기하거나 회차하는 장소로 활용될 수 있다. 둘째, 미래 교통 수요의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정차역을 확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함이다. 특정 지역의 인구 유입, 관광 자원 개발, 산업 단지 조성 등이 이루어질 경우, 기존에 역사가 존재하는 간이역은 정차 재개에 있어 비용과 시간 면에서 매우 효율적인 선택지가 된다.

셋째, 철도망 전체의 균형적인 관리와 데이터 수집에도 이점이 있다. 열차가 정차하지 않더라도 열차 운행 시스템에는 해당 간이역의 위치와 관련 정보가 지속적으로 반영되며, GPS 기반 운행 기록 관리와 속도 조절 시스템 운영에 일정한 기준점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이처럼 무정차 간이역은 단순히 '쓸모 없는 공간'이 아닌, 철도 시스템의 정밀성과 유연성을 뒷받침하는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지역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남겨진 장소

기차가 더 이상 정차하지 않더라도, 많은 간이역들은 여전히 지역 주민들의 삶의 일부로 남아 있다. 과거 통학이나 통근의 기억이 서려 있는 공간으로서, 마을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장소로 기능하기도 한다. 특히 고령층 주민들 사이에서는 해당 간이역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적 안정감을 느끼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지역 자치단체는 역 건물을 문화 공간이나 전시관, 관광 안내소 등으로 활용하면서 그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와 같은 활용은 지역 경제 활성화와도 맞닿아 있다. 예컨대 무정차 간이역이 유명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로 알려질 경우, 이를 중심으로 한 관광 프로그램이 기획되며 방문객이 유입되기도 한다. 실제로 전라남도의 한 간이역은 정차하지 않는다는 점을 오히려 '기차가 머물지 않는 고요한 역'이라는 테마로 활용하여 사진 촬영 명소로 탈바꿈한 사례가 있다. 이는 간이역이 비록 교통 기능은 상실했을지라도, 문화적 자산으로서 충분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라지지 않는 이유, 남겨야 할 가치

기차가 정차하지 않는 간이역은 언뜻 보면 그 존재 이유조차 의심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무정차 역은 단순한 낡은 구조물이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추억을 담은 상징이자 철도 운영의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나아가 관광·문화 자원으로 전환될 가능성 또한 내포하고 있어, 그 유지와 관리는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닌, 장기적 시야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무정차 간이역은 기차가 멈추지 않는 공간일지라도, 여전히 지역과 철도 시스템 사이를 잇는 조용한 연결점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무정차 간이역

현재 우리나라에서 운영되고 있는 무정차 간이역은 실제로 정차 기능을 상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역 구조물과 명칭을 유지하고 있는 역들을 일컫는다. 이러한 역들은 법적 폐역 조치를 받지 않았거나, 향후 철도 이용 수요의 변동 가능성을 고려해 물리적으로 보존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는 전라남도 곡성군에 위치한 ‘압록역’을 들 수 있다. 해당 역은 과거에는 정기 여객열차가 정차하였으나, 현재는 정규 열차가 정차하지 않고 통과하는 무정차 간이역으로 전환된 상태이다. 이 외에도 강원도와 전라북도, 경북 내륙 지역 등지에는 비슷한 형태의 무정차 간이역이 산재해 있으며, 이들은 열차 운행 체계상 여전히 노선에 포함되어 있지만, 실질적인 여객 운송 기능은 수행하지 않고 있다.

이들 역은 철도 운행을 위한 기술적 기준점으로, 혹은 선로 유지·보수와 열차 운행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필요한 인프라로 기능하는 동시에, 지역 공동체에게는 문화적 상징물로 남아 있는 경우도 많다. 특히 몇몇 역은 정기적인 정차는 없으나, 특정 시기나 특별 이벤트에 따라 한시적으로 열차가 임시 정차하기도 하며, 이로 인해 철도기관과 지역사회 간의 연계가 유지되기도 한다. 이러한 무정차 간이역의 존재는 우리 철도망이 단순히 효율만을 따지는 구조가 아닌, 미래 가능성과 지역적 연속성을 고려한 다층적 운용 방식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