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역이라 하면 일반적으로는 플랫폼과 대합실, 매표소와 개찰구를 갖춘 구조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국의 일부 시골 간이역에서는 이 같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실제로 철도 시설의 극단적인 간소화가 이루어진 몇몇 무인 간이역은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단출한 구조를 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승강장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 이른바 '승강장 없는 역사'도 있다. 이러한 역에서 열차를 어떻게 타고 내리는 것인지, 그 구조와 운영 실태, 그리고 관련된 안전 문제와 제도적 보완책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승강장이 없는 간이역의 실체
승강장이 없는 역이라 해서 열차에 승하차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들 역은 일반적으로 단선 구간의 농촌 지역이나 철도 수요가 극히 적은 산간 지대에 위치하며, 일정 구간에 차량이 정차할 수 있는 공간만을 확보해 놓고 그곳을 사실상의 승강장처럼 사용하는 방식이다. 바닥에는 별도의 구조물이 설치되지 않거나, 단순히 자갈 위에 간이 포장된 작은 구역이 존재할 뿐이다. 이러한 형태는 철도공사 내부에서도 '임시 승강장' 또는 '비정규 정차지'로 분류되며, 정식 역사로 등록되어 있더라도 물리적인 승강장 구조는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승강장이 없는 역사에서는 열차가 정차할 때 객차의 문이 직접 철길 옆 자갈밭 혹은 평탄화된 지면과 맞닿게 된다. 승객은 열차에서 내릴 때 발을 높이 들어올리거나, 역무원이 제공하는 휴대용 발판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승무원의 안내 하에 진행되며, 안전 확보를 위해 열차가 완전히 정차한 이후에만 승하차가 허용된다.
왜 승강장을 설치하지 않았을까?
승강장이 없는 간이역이 존재하는 배경에는 명확한 경제성과 수요 문제, 그리고 철도 정책의 우선순위가 자리하고 있다. 하루 평균 탑승 인원이 한 자릿수에 불과한 역에 정식 승강장을 설치하고 유지·보수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매우 비효율적이다. 더욱이 이러한 역들은 대부분 지형적으로 협소하거나, 토지 확보에 제약이 있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물리적인 설치도 어렵다. 결국 철도 운영기관은 안전 규정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최소한의 정차 조건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대체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과거에는 승강장이 존재했으나, 구조물의 노후화와 이용자 감소로 인해 철거되거나 방치된 경우도 존재한다. 이 경우, 역명은 여전히 지도나 시각표에 남아 있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단지 표지판 하나와 비상통화 장치만 남아 있는 광경도 목격할 수 있다.
이용자 입장에서의 불편과 안전 문제
승강장이 없는 역을 처음 이용하는 승객은 대체로 당황하거나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고령자나 어린이는 높은 문턱을 넘는 승하차 과정에서 신체적 부담을 느낄 수 있으며, 우천 시에는 미끄러짐의 위험도 존재한다. 또한, 야간이나 조명이 부족한 환경에서는 열차와 지면 사이의 간격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사고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철도공사는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일부 간이역에는 간이형 계단 구조물을 설치하거나, 열차 내부에 접이식 발판을 비치하는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다. 아울러, 열차 승무원들은 해당 역에서의 정차 시 특별히 안내방송을 강화하고 있으며, 승하차 과정에서 직접 이용자를 보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하며, 장기적으로는 물리적인 승강장 설치 또는 정차역 통합 등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요구된다. 실제로 일부 철도 이용자 단체에서는 승강장 미설치 간이역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철도공사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외국 사례와의 비교
해외의 경우, 승강장 없는 역은 드문 편이다. 유럽이나 일본 등 철도 인프라가 잘 발달된 국가에서는 최소한의 승강장은 반드시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철도 안전에 대한 기준이 보다 엄격하며, 승객의 편의와 접근성을 공공서비스의 기본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의 시골 간이역은 인구가 적고 열차 이용이 드물더라도, 목재나 콘크리트를 활용한 단일 승강장을 반드시 갖추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의 일부 무인 간이역은 비용 절감이라는 명분 아래 안전과 편의성이 일부 희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모든 역에 동일한 수준의 인프라를 설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최소한의 안전 기준은 반드시 충족되어야 한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현실과 원칙 사이의 균형을 위한 고민
승강장이 없는 간이역은 철도 운영의 경제성과 지역교통 접근성 간의 균형 속에서 등장한 일종의 절충안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적은 인구 밀도와 낮은 수요 속에서도 철도 서비스의 맥을 이어가려는 노력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이용자의 불편과 안전 문제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앞으로는 지역사회와 철도 운영기관 간의 협의를 통해 이용자 중심의 개선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무인 간이역이 단지 예산 절감의 결과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지역 교통의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정교한 정책적 접근과 현장 중심의 실천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승강장 없는 간이역' 현황
현재 우리나라에서 '승강장이 아예 없는 역'은 철도 안전 기준과 설비 규정의 강화로 인해 사실상 대부분 폐지되었거나 정기적인 열차 운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지역에서는 일반적인 철도역의 기준에서 벗어난, 매우 협소하거나 구조적으로 미비한 형태의 승강장을 갖춘 간이역들이 운영되고 있다. 이들 역은 주로 무궁화호나 통근열차가 정차하는 시골 지역에 위치하며, 승객의 수가 극히 적고, 열차 이용 목적도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과거 전라선에 위치했던 전남 곡성군의 가정역은 정식 승강장 없이 간단한 대기 장소만을 갖춘 채 운행되었던 사례로, 현재는 정차하지 않는 곳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비정형적 구조의 대표 사례로 알려져 있었다. 충북 영동의 반야역 역시 운영 당시에는 승강장이 없거나 매우 낮은 구조물만 존재했으며, 이용자의 안전을 고려한 기준에 미치지 못해 결국 폐지된 바 있다.
한편, 현재도 운영 중인 경북 영주의 석포역은 매우 협소한 승강장을 갖추고 있는 간이역으로, 일부 구간은 단단히 다져진 자갈이나 흙 위에 승하차를 하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정선선에 위치한 강원도 나전역 역시 과거에는 정식 승강장이 없어 승무원이 발판을 설치해 승객의 승하차를 도왔다는 사례가 있다.
이처럼 승강장 없는 역은 더 이상 제도권 내에서 허용되지 않지만, 구조적으로 미비하거나 최소한의 기능만 유지하는 간이역들은 여전히 존재하며, 지역의 고령자나 교통 접근성이 낮은 주민들의 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역들은 안전 문제로 인해 항상 운영의 유동성이 따르며, 향후 철도 정책 변화에 따라 통폐합이나 리모델링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상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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