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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경북 울진의 평해역, 동해선 철길 끝자락에서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에 자리한 평해역은, 한때 동해선을 따라 남북을 오가던 여객과 화물을 실어 나르던 조용한 간이역이었다. 공식적으로는 폐역이지만, 철로 일부가 여전히 보존되어 있으며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채 지역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크지 않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평해역은 울진 지역의 해안 문화와 내륙 교통을 연결하던 의미 있는 거점이었다.

평해역의 설립과 기능적 배경

평해역은 1960년대에 개업한 역으로, 당시 울진 지역의 농수산물 유통과 주민 이동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동해선이 포항에서 출발하여 영덕, 울진을 거쳐 삼척과 강릉으로 이어지는 계획 하에 평해역은 남부 경북 해안선의 교통을 담당하는 중간 지점이었다. 이 철도 노선은 특히 물류 운송에 있어 지역 경제를 뒷받침하는 기반이었으며, 평해역은 울진 남부와 주변 읍면의 수산물과 임산물, 농산물을 내륙 시장으로 연결하는 중요한 경로로 사용되었다.

역사는 전형적인 간이역 구조를 따랐으며, 작고 단출한 목조 건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루에 왕복 두세 차례 무궁화호 또는 통근 열차가 정차하며, 주민들은 이를 이용해 포항이나 삼척, 때로는 강릉까지 이동하였다. 특히 명절 기간이나 장날 전후에는 승객 수가 일시적으로 급증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시기 역은 단순한 교통 시설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마을 사람들의 삶과 리듬을 공유하는 장소가 되었다.

한 시절을 풍경처럼 지나보낸 평해역

평해역이 운영되던 시기에는 역 주변으로 소규모 상점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역 앞 광장은 소소한 장터로 활용되곤 하였다. 농민들은 새벽녘 수확한 채소와 과일을 리어카에 싣고 와 역 앞에 좌판을 펼쳤고, 어민들은 갓 잡아 올린 생선을 부지런히 실어 날랐다. 지역 상인들과 주민들 간의 거래가 이루어졌고, 여행객은 간이 매점에서 김밥과 사이다를 사 먹으며 열차를 기다렸다.

철도가 지역에 남긴 변화는 작지만 분명하였다. 아이들은 역을 바라보며 도시로의 나아감을 꿈꿨고, 청년들은 역에서 기차를 타고 입대를 하거나 취업을 위해 먼 도시로 향했다. 특히 울진이 해양과 산림 자원을 동시에 보유한 지역이라는 점에서, 평해역은 그 모든 자원을 외부와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이는 지역 경제 구조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경북 울진의 평해역, 동해선 철길 끝자락에서

철도 정책 변화 속에서의 폐역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철도 운영의 효율성을 중심으로 한 국가 교통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수요가 적은 간이역들은 점차 축소되거나 폐쇄되는 운명을 맞이하였다. 평해역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점차 이용객이 줄어들었고, 결국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열차 운행이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폐역 이후에도 한동안 건물과 철로는 남아 있었지만,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었고 자연의 일부처럼 조용히 사라져 갔다.

현재는 역 건물 대부분이 철거되었으며, 간혹 철도 마니아나 지역 주민들이 추억을 되새기기 위해 찾는 정도에 그친다. 그러나 역이 남긴 기억은 단지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지역 사람들의 생활 문화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평해역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유

폐역 이후에도 평해역에 대한 관심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철도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한국 철도 역사 속 동해안 간이역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되며, 지역 주민들 또한 마을의 옛 시절을 회상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소로 기억하고 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나 지역 문화단체에서는 폐역을 재정비하여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으나, 본격적인 복원 계획은 실행되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동해선의 일부 구간이 복원되고 고속화되는 사업이 진행되면서, 과거 역의 위치와 노선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비록 평해역 자체가 다시 운영될 가능성은 희박하나, 그 존재가 남긴 의미는 철도와 함께한 지역 문화의 중요한 조각으로 여겨진다.

동해 바다와 맞닿은 조용한 철길의 끝

평해역은 동해선 남단부의 종착지와 가까운 위치에 자리하였던 만큼, 역 주변으로는 푸른 바다와 인접한 경관이 펼쳐져 있다. 역에서 걸어서 갈 수 있었던 해안가에서는 작은 어촌 마을의 삶이 이어졌고, 철길 옆을 따라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즐기기에 좋은 길도 있었다.

오늘날 그 길은 더 이상 열차가 달리지 않지만,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그곳을 따라 걷고, 바다를 바라보며 옛 시절을 회상하곤 한다. 평해역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서면, 철도라는 존재가 단지 기차의 이동만을 의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그것은 곧 공동체의 연결이며, 삶의 방향을 제시하던 경로였던 것이다.

폐역이 된 그 자리는 이제 철도 유산으로 남아, 지역 사람들과 조용히 호흡하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그곳을 다시 찾는다면, 기차는 없더라도 그 옛 정취는 여전히 선로 주변을 흐르고 있을 것이다.

 

평해역 인근 가볼만한 곳

평해역이 위치했던 울진군 평해읍 일대는 조용한 해안 마을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으며, 자연과 역사, 그리고 문화가 어우러진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역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기성망양해수욕장은 고운 모래사장과 맑은 물빛으로 여름철 피서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또한, 동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드라이브나 자전거 여행에 적합하며, 길을 따라 펼쳐지는 어촌 풍경은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소박한 아름다움을 제공한다. 인근에는 울진 금강송 군락지와 불영계곡, 덕구온천 등 천혜의 자연 관광자원이 분포하고 있어 당일치기 소풍은 물론 장기 체류에도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특히 바다와 산, 그리고 과거 철도 문화의 흔적이 교차하는 이 지역은 조용한 사색과 여유를 원하는 여행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공간이다.

 
 
평해역 간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