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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지역별 간이역 탐방 시리즈] 경남 합천의 묘산역, 무궁화호가 멈춘 그 자리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 낙동강 지류를 끼고 완만한 산세가 펼쳐지는 이 고장은 한때 철도 교통의 작은 요충지였다. 그 중심에 있던 묘산역은 지금은 운영되지 않는 폐역이지만, 여전히 지역 주민과 철도 애호가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무궁화호가 정차하던 그 자리는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발걸음과 짐을 실어 나른 터전이었으며, 지금은 조용한 풍경 속에 그 흔적을 고요히 품고 있다.

묘산역의 개통과 그 의미

묘산역은 1966년 11월 1일, 경전선(慶全線)의 연장 구간이 개통되며 동시에 개역하였다. 경전선은 경상도 지역을 동서로 관통하며 경주에서 순천까지 연결하는 노선으로, 산업화와 지역 균형 개발의 필요성 속에 구축된 교통망이었다. 이 중 묘산역은 합천군 묘산면에 위치한 간이역으로, 지역 내 물류 이동과 주민의 이동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기능하였다.

묘산역은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았으나, 인근 면 단위 마을들의 중심지로서 그 역할이 작지 않았다. 당시 합천은 버스 교통이 완전하지 않았던 상황이었고, 묘산역은 농민과 상인들의 주된 교통 창구였다. 장날이면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역 주변을 메우며 소소한 장터가 형성되기도 하였고, 열차를 타고 도시로 향하는 청년들과 학생들로 붐비던 시절도 있었다.

지역 경제와 생활의 중심

묘산역은 단순한 교통 거점을 넘어 지역 경제 활동의 중심지였다. 이 일대는 벼농사와 고추, 마늘 등 특산물이 활발히 재배되던 곳으로, 묘산역을 통해 창원, 마산, 부산 등지로 농산물이 출하되었다. 역 앞에 자리한 화물 승강장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으며, 물류 차량과 인력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또한, 군부대 장병들의 이동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합천 일대에는 군사 훈련장이 다수 존재하였고, 훈련을 마친 병사들이 고향으로 향할 때 묘산역은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명절이나 휴가철이 되면 짐을 든 가족들이 역에 나와 배웅하거나 마중을 하는 모습은 묘산역의 일상이었다.

무궁화호가 멈추던 시간

묘산역에는 무궁화호 열차가 정기적으로 정차하였다. 비록 모든 열차가 정차하는 주요역은 아니었지만, 하루 몇 차례씩 정차하는 열차는 지역 주민들에게 큰 의미였다. 학생들은 통학을 위해, 상인들은 거래를 위해, 어르신들은 병원을 가기 위해 이 열차를 이용하였다.

무궁화호의 정차 시간은 주민들의 하루 일과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아침과 오후의 열차 시간에 맞춰 일정을 조정하였고, 역 앞에는 소규모의 매점과 대합실이 존재하여 작은 마을의 중심지가 되었다. 간이역이었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공간이었고, 열차의 기적 소리는 마을 전체의 하루를 여는 알림처럼 여겨졌다.

폐역 이후, 남겨진 공간과 기억

2006년, 경전선의 복선 전철화 및 노선 조정이 본격화되면서 묘산역은 정차역에서 제외되었고, 이후 점차 기능을 상실하며 폐역되었다. 열차가 멈추지 않게 된 그 자리는 자연 속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역사 건물은 일부 남아 있으나 사용되지 않으며, 철도 시설 역시 철거되거나 방치되었다.

그러나 묘산역에 얽힌 기억은 여전히 지역 주민들에게 깊은 의미로 남아 있다. 당시 이 역을 이용하던 이들은 그 시절을 추억하며 지금도 간간이 그 자리를 찾는다. 특히 철도 마니아들과 사진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잊힌 역사의 한 조각으로서 관심을 끌고 있으며, 일부는 이곳을 철도 유산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묘산역이 남긴 흔적과 그 보존 가능성

묘산역이 있던 자리 근처에는 지금도 당시 철로의 일부가 남아 있다. 풀숲 사이로 삐져나온 녹슨 레일과 잡초가 무성한 선로 주변은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역사는 일반인의 접근이 자유롭지는 않지만, 간간이 찾는 이들의 발걸음으로 길이 나 있으며, 조용한 산간마을의 풍경과 어우러져 묘한 정취를 자아낸다.

지방자치단체나 주민 단위에서 이 공간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은 미미하나, 최근 들어 지역 재생 및 철도 유산 보존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묘산역 역시 그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단순히 철도를 위한 장소가 아니라, 마을의 역사와 기억을 품은 공간으로서 보존될 가치는 충분하다.

멈춘 열차, 멈추지 않은 기억

묘산역은 더 이상 열차가 서지 않는 조용한 공간이 되었다. 그러나 그곳은 단지 기능을 잃은 폐역이 아니라, 지역민의 삶과 밀접히 연결되었던 기억의 장소이다. 무궁화호가 멈추던 플랫폼 위에는 수많은 이야기와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으며, 그 기록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돌아보아야 할 지역의 문화 자산이다.

오늘날 우리는 빠르고 효율적인 교통 수단에 익숙해졌지만, 과거의 느린 철도망은 사람과 사람, 마을과 도시를 잇는 정다운 연결고리였다. 묘산역은 그런 시대의 상징으로, 비록 실체는 사라졌을지라도 그 의미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합천을 지나며 한적한 길가에 남겨진 그 자리를 마주할 때, 그곳이 단지 폐역이 아닌, 시간의 지층을 품은 장소임을 느끼게 된다.

묘산역 인근의 가볼 만한 명소들

묘산역이 위치한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 일대는 조용한 시골 풍경 속에 숨어 있는 다채로운 명소들을 품고 있다. 폐역의 정취를 느낀 후, 인근 지역을 둘러보며 합천의 자연과 문화를 체험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여정이 될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명소는 가야산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해인사이다. 해인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사찰로, 한국 불교 문화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장소이다.

또한, 합천호와 그 주변의 백리벚꽃길은 봄철이면 벚꽃이 만개하여 장관을 이루며, 산책이나 드라이브 코스로 인기가 높다.

이 외에도 합천영상테마파크는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한국을 재현한 오픈 세트장으로,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지로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묘산역 주변에는 역사와 자연, 문화를 아우르는 다양한 명소들이 자리하고 있어, 폐역의 아련한 기억을 되새기며 주변을 탐방하는 여정은 더욱 풍성한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지역별 간이역 탐방 시리즈] 경남 합천의 묘산역, 무궁화호가 멈춘 그 자리